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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보호 속에 멈춘 성장, 김수진(가명)의 대학 3년과 자립의 숙제

장애인의 취업 2026. 4. 20. 14:19

발달장애 학생의 성장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정환경, 부모의 양육방식, 학교의 교육 방향, 사회적 기회가 함께 작용합니다. 김수진(가명) 학생은 지적장애 중증의 여학생이지만 기본적인 인지능력과 컴퓨터 활용 능력, 성실한 수업 태도, 원만한 또래관계 등 여러 강점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학교생활 만족도도 높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있었습니다.

 

대학 3년 동안 가장 크게 보였던 과제는 학습능력보다 자립능력이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 자기표현, 진로 선택, 문제 해결 등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학생보다 부모의 판단이 앞섰습니다. 학생 역시 어려움이 생기면 학교와 직접 소통하기보다 부모를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존이 아니라 오랜 과보호 속에서 형성된 삶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결국 졸업 후 여러 취업 기회가 있었지만 거리, 힘듦, 환경 등의 이유로 모두 거절되었고 지금은 부모 직장에서 단시간 업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 학생의 성장 이야기이자, 사랑이 때로는 자립을 늦출 수 있다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록입니다.

능력은 있었지만 선택할 기회가 적었던 학생

김수진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많이 보호받으며 자랐구나’였습니다. 딸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단순한 애정의 수준을 넘어 생활 전반을 부모가 대신 결정하고 통제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느낌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대중교통 이용이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못 타는 것이 아니라, 시도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늘 걱정이 많았고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학년 자료를 보면 김수진 학생은 결코 능력이 낮은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인지능력이 양호했고 수업 태도가 바르며 주어진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일상 언어 이해와 표현도 비교적 자연스러웠고, 일정관리와 소비활동도 가능했습니다. 컴퓨터 타자 속도도 보통 수준이었고 손기능도 좋아 다양한 실습 활동에 잘 참여했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큰 갈등 없이 지냈고 학교생활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개인위생과 정리 능력도 우수하여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과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자기 검열이 높아 실제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상황을 미소로 넘기고, 불편함이나 갈등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대면보다 온라인 소통을 더 편하게 느꼈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실패를 걱정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모습도 반복되었습니다. 즉, 김수진 학생의 문제는 능력 부족보다 ‘주도성의 부재’에 가까웠습니다. 누군가 정해준 길은 잘 걸었지만, 스스로 길을 선택하는 경험은 부족했습니다.

대학 3년 동안 드러난 자립의 과제

2학년 전공학부에서는 사무자동학과 수업을 들었습니다. 평가 자료에 따르면 워드, PPT, 엑셀의 기초 기능을 익히고 있었으며 특히 워드 실기 부분은 학기 초보다 큰 향상을 보였습니다. 컴퓨터 전공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도 좋았고, 새롭게 배운 기능을 통해 과제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도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분명한 강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반복적으로 기록된 문장이 있습니다. “수동적이다”, “도움을 먼저 요청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지시가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과제를 수행하다 막히면 먼저 질문하지 않고 멈춰 있었습니다. 교사가 다가가 물어볼 때만 어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무보조 업무에서도 직무를 말로는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발적인 수행은 부족했습니다. 단계별 과제 후 다음 단계로 전환하거나 완료 보고를 하는 데에도 지속적인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감정 표현 역시 제한적이었습니다. 실제 욕구나 감정이 있어도 대부분 웃음과 미소로 넘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방과 후 연극상 담을 통해 슬픔,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은 오히려 이 학생 안에 눌려 있던 감정이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부모 상담 내용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부모님은 “안전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이면 된다”라고 말씀하셨고, 여러 외부 경험이나 도전은 미루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MT, 여름캠프 등의 불참 이유로 과잉보호와 규제가 언급되었고, 학생 스스로도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많은 자기 규제를 하며 하고 싶어도 참는 모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사의 눈으로 보면 안타까운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학생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환경이 그 능력을 충분히 꺼내지 못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보호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보호는 성장의 연습 기회를 빼앗기도 합니다.

사랑과 보호, 그리고 자립 사이의 어려운 질문

김수진 학생은 졸업 후 취업 대신 부모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학교에서 연결한 여러 취업 기회는 거리 문제, 힘들 것 같다는 걱정,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부모님의 직장에서 몇 시간씩 일을 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맞는 것일까요. 학교는 자립을 위해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모는 안전과 행복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두 주장 모두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는 평생 자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 가장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학교는 학생이 가진 잠재력을 보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김수진 학생 사례는 발달장애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보호받는 삶’과 ‘도전하는 삶’ 중 무엇이 더 좋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완벽히 준비된 뒤 자립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작은 실패와 불편함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이 대부분의 성인 발달 과정입니다. 김수진 학생은 분명 능력이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성실했고, 관계도 좋았고, 배움의 태도도 있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이 조금 더 필요했습니다.

 

만약 대학 3년 동안 더 많은 선택권과 이동 경험, 진짜 사회 경험이 주어졌다면 지금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교사는 부모를 대신할 수 없고, 부모의 철학을 강제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다만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학생 스스로 “이제는 내가 해볼게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기다릴 뿐입니다. 김수진 학생의 이야기는, 사랑이 때로는 날개가 되지만 때로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민에 빠진 학생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