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발달장애 성인의 생활경제교육에서 계산이나 카드 사용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돈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입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친구나 직장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돈을 빌려주고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지도했던 한 학생도 직장실습을 시작한 뒤 동료의 부탁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여 몇 차례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문제는 금액을 계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거래와 친구 관계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후 생활경제교육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규칙만 알려주기보다 부탁을 받았을 때 멈추고 판단하며, 필요하면 보호자나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을 함께 연습했습니다.

친구의 부탁과 돈거래는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발달장애 청년 가운데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면 관계가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어렵다고 말하면 도와주는 것이 좋은 행동이라고 배워 왔기 때문에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경제생활에서는 친절한 행동과 금전거래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직장실습을 하던 한 학생도 동료가 소액을 빌려 달라고 하자 별다른 고민 없이 돈을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뿐이었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부탁을 받았고, 학생은 관계가 어색해질까 걱정해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통장 내역을 확인한 뒤에야 반복된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단순히 “앞으로 돈을 빌려주지 마라”고 지도하면 실제 상황에서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저 친구가 부탁했다고 해서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며, 돈을 빌려주지 않아도 친구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돈과 관련된 부탁을 받았을 때 바로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두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대답하지 않는 연습부터 시작하기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행동은 거절이 아니라 ‘멈추기’입니다. 부탁을 받은 자리에서 곧바로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고, 혼자 결정해도 되는 일인지 먼저 판단하는 시간을 갖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제가 지도했던 학생에게도 이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실제 상황을 가정해 친구가 현금을 빌려 달라고 하거나 대신 결제해 달라고 부탁하는 역할을 만들고, 바로 대답하지 않은 뒤 보호자나 담당자에게 먼저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상황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려워했지만 일정한 대응 순서를 반복하자 부탁을 받았을 때 즉시 돈을 건네는 행동이 줄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복잡한 표현보다는 몇 가지 기본 문장을 정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돈은 빌려주기 어렵습니다”, “먼저 확인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대신 결제는 하지 않습니다”처럼 짧고 분명한 표현을 실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장을 외우는 것보다 돈과 관련된 요청은 즉시 결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익히는 데 있습니다.

상황 먼저 해야 할 행동 안전한 대응
현금을 빌려 달라는 부탁 바로 지갑을 꺼내지 않습니다. 혼자 결정하지 않고 보호자나 담당자와 상의합니다.
대신 결제해 달라는 부탁 휴대전화나 카드를 건네지 않습니다. 대신 결제는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유지합니다.
카드·계좌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정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보호자나 금융기관에 바로 도움을 요청합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거래 내용을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립니다.

돈을 지키는 교육에는 금융 안전도 포함됩니다

돈을 빌려주는 문제는 현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체크카드, 계좌이체, 휴대전화 소액결제, 인증번호처럼 돈과 연결된 정보도 함께 교육해야 합니다. 특히 친한 사람이 부탁했다는 이유로 카드를 빌려주거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행동은 더 큰 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은 친구에게 현금을 빌려주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휴대전화로 대신 결제해 달라는 요청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돈을 직접 건네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이 사례를 계기로 교육 범위를 넓혀 카드 대여, 계좌번호 전달, 송금 요청, 인증번호 공유까지 모두 ‘경제적 결정’이라는 점을 함께 지도했습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정해 둘 수 있는 안전 기준도 필요합니다. 카드와 비밀번호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결제하지 않으며, 반복적으로 돈을 요구받으면 혼자 해결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미 돈을 빌려준 상황에서는 학생을 먼저 나무라기보다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차분하게 확인해야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대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생활경제교육의 목적은 모든 위험을 부모가 대신 차단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학생이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친구가 돈을 빌려달고 해서 거절하는 모습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 돈은 지킬 수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강한 관계에서는 서로의 경제적 경계를 존중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친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돈을 직접 건네는 방법 외에도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지원을 함께 찾아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문제를 자신의 돈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은 없다는 점도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역할극을 반복했던 학생은 이후 비슷한 부탁을 받았을 때 바로 돈을 건네지 않고 먼저 상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결과보다 부탁을 받은 순간 한 번 멈추고 스스로 판단하려 했다는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면서 학생은 체크카드 사용이나 물건 구매에서도 이전보다 신중하게 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생활경제교육을 할 때도 계산법이나 카드 사용법만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돈을 지키고 거절하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을 함께 다룰 생각입니다. 제가 여러 학생을 지도하며 확인한 경제적 자립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지킬 수 있고,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한 경제생활이 시작됐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