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호산나대학에서 만나는 여러 얼굴들
요즘 저는 호산나대학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학생마다 속도도 다르고,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도 모두 다릅니다.
어떤 학생은 적극적으로 말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워하고, 어떤 학생은 조용하지만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쌓아두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준표(가명)도 처음에는 그저 성실한 학생으로 보였습니다. 수업에도 잘 참여하고, 지시도 잘 따르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준표에게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교수님, 저는 잘 못할 것 같아요"
준표는 지적장애 3급을 가진 학생으로, 마음이 매우 여린 편입니다. 수업 시간에는 집중하려는 모습도 보였고, 잘하고 싶다는 의지도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늘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잘 못할 것 같아요."
조금만 틀려도 표정이 굳었고, 누군가가 지적하면 금세 말을 줄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됐습니다.
준표는 틀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틀리는 순간,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킬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패를 피하려는 선택
그 두려움은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준표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시도하기보다 멈추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틀릴 가능성이 있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수학 시간에는 그 모습이 더 뚜렷했습니다. 기본 개념이 부족했지만, 틀릴까 봐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혼자 남아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말을 걸어야 할지 잠시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교실 문 앞에서 한 번 더 뒤돌아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경험일지도 모른다.'
작은 성공을 만들어주기
그래서 접근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큰 목표를 요 구하기 보다작은 성공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준표에게 하나의 과제를 주었습니다.
계산기를 사용해서 물건 사 보기
처음에는 버튼을 누르다가 멈추고, 다시 저를 바라보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도와달라는 눈빛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준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 오늘 혼자 계산기 써봤어요."
그날은 괜히 저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짧은 말 하나에,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몸으로 배우는 수업
준표는 눈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할 때 더 잘 배우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방식도 바꿨습니다.
강의실에 화폐 활동을 만들고, 바닥에는 수 직선을 길게 붙였습니다. 직접 돈을 주고받고, 숫자를 따라 움직이며 개념을 익혀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해봤다 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면서 준표의 표정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 를 받아들이는 시간 수업 중에는 나를 이해하는 활동 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런 게 어려워요."
이 말이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이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경험이 만드는 변화
준표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동과 소그룹 활동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스쿼트, 자전거, 간단한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억지로 말을 시키지 않아도 함께하는 시간이 관계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조금씩 웃는 시간이 늘어났고,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준표는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틀려도 바로 멈추지 않습니다. 한 번 더 해보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교수님, 이번에는 제가 해볼게요."
그 한마디가 그동안의 시간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결론: 기다림이 만든 변화
준표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괜찮다 라고 말해주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속도는 느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바뀌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현장에서 애쓰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부모님들께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장은 멈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한 걸음을 기다리고 계실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