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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제가 혼자 해볼게요" 의존적인 학생이 달라진 순간

by 3분 정보창고 2026. 3. 23.

들어가며: 초등 특수교사, 발달장애인 대학에 서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 동안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20년 차 베테랑이라고 부르지만, 작년 저는 그 익숙한 자리를 떠나 전혀 다른 곳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 발달장애 성인을 위한 교육기관, 호산나대학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대학과는 많이 다릅니다. 시험이나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혼자 살아가는 힘 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담임교수제 가 중심이 됩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맡아 생활부터 정서까지 함께 살피는 구조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의 교육은 가르친다 기보다 함께 살아간다 에 더 가깝다는 것을요.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만난 지호의 이야기입니다.

 

교수님, 도와주세요 에서 시작된 수업

지호(가명)는 눈웃음이 참 예쁜 학생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밝았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바로 저를 찾았습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손을 멈췄습니다.
교수님, 이거 해주세요.
그 말이 습관처럼 반복됐습니다.
평가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수행 능력에 비해 참여도와 자발성이 부족함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답답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도움을 요청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익숙해진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호에게는 혼자 해본 경험 이 부족했을지도 모릅니다.

 

작게 나누고, 작게 성공하기

그래서 저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 보호대 착용하기 라는 과제를
• 헬멧 쓰기
• 무릎 보호대 차기
• 팔꿈치 보호대 차기
이렇게 나눴습니다.
하나를 해내면 바로 말해줬습니다.
지호야, 이건 네가 혼자 한 거야.
처음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복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손으로 배우는 수업

지호는 눈으로만 보는 학습에는 집중하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지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강의실에 화폐 은행 을 만들고, 바닥에는 길게 수 직선을 붙였습니다.
지호는 직접 돈을 주고받고, 숫자를 따라 걸으며 개념을 익혔습니다.
이때부터였습니다. 수업 중 멍하니 있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 제가 혼자 했어요
어느 날, 작은 과제를 하나 줬습니다.
운동화 끈, 혼자 묶어보기
처음에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손을 대다가 멈추고, 다시 저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나던 날이었습니다.
지호가 운동화 끈을 묶고 저에게 걸어왔습니다.
교수님, 제가 했어요.
그날 지호는 바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 서서 계속 웃고 있었습니다.
그 표정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지호가 신발 끈을 묶고 있는 모습

혼자가 아닌 함께 로 가는 과정

지호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심스러운 편이었습니다.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계도 방법 부터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 이름 묻기
• 전화번호 물어보기
• 같이 할지 물어보기
하나씩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스쿼트, 버피테스트, 벤치프레스.
몸을 쓰는 활동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생겼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라이딩을 하고, 카페를 가고, 농구를 하면서 지호는 조금씩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이라는 교육

지금의 지호는 여전히 느립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바로 도움을 찾지는 않습니다.
혼자 해보려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아이보다, 천천히라도 방향이 바뀌는 아이가 더 단단합니다.

 

마무리하며

특수교육은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해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호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성장은 멈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현장에서 애쓰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부모님들께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스스로 를 기다리고 계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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