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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발달장애 학생들을 지도해 보니 이 말은 생각보다 많은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차려야 하고, 하던 일을 멈출 시점을 판단해야 하며, 누구에게 어떤 말로 질문할지도 정해야 합니다. 질문한 뒤에는 상대방의 설명을 듣고 다시 업무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보이지만, 일부 발달장애 청년에게 도움 요청은 별도의 연습이 필요한 직장생활 기술이었습니다.

 

민호(가명)는 사무보조 실습에 참여했던 학생입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끝까지 하려는 편이었습니다. 문서를 종류별로 분류하거나 사무용품을 정해진 위치에 정리하는 일은 몇 차례 연습한 뒤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민호가 직장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고, 반복 작업을 힘들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습이 진행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익숙한 작업 순서가 조금만 달라져도 민호는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새로운 지시를 요구하거나 불만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건을 든 채 가만히 서 있거나, 이미 확인한 서랍을 여러 번 다시 열어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담당자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몰랐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 글은 실제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름과 일부 상황을 변경했습니다.]

 

업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음 행동을 몰랐던 학생

어느 날 사무실의 복사용지 보관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민호는 평소처럼 이전 보관함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복사용지가 없었습니다. 바로 옆자리에는 업무 담당자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함께 실습하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호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습니다. 빈 보관함 앞에서 한동안 서 있다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담당자가 복사용지를 가져오지 않은 이유를 묻자 민호는 “어디 있는지 몰랐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담당자는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데 왜 그냥 왔느냐”고 말했습니다. 민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모르냐고 할까 봐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학생이 멈춰 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면 업무를 회피하거나 책임감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호는 일을 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질문했다가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고, 다른 사람이 일하는 중에 말을 걸어도 되는지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말로 정리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면 교사가 먼저 다가가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주기도 합니다. 이런 지원은 학생을 보호하는 데 필요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주변 사람이 먼저 어려움을 알아차려 주는 방식에만 익숙해지면 직장에서 곤란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직장은 교실과 달랐습니다. 동료와 관리자는 각자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민호가 말하지 않으면 왜 멈춰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업무 지시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가 막혔을 때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모르겠어요”를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는 과정

처음에는 저도 민호에게 “다음부터는 모르면 바로 물어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은 다시 반복됐습니다. 돌아보면 ‘물어보라’는 말 역시 너무 막연한 지시였습니다.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에게 질문하라고만 요구한 셈이었습니다. 민호와 함께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상황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어디까지 업무를 했는지,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지, 그 내용을 누구에게 물어봤어야 하는지를 차례로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민호가 모든 상황을 “그냥 몰랐어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업무 전체를 모르는 것과 한 단계만 확인하면 되는 상황을 구분하는 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복사용지를 예로 들면 민호는 ‘복사용지를 가져오라는 지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전 보관 장소를 알고 있었고 그곳까지 이동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보관 장소가 바뀐 뒤 새로운 위치를 몰랐습니다. 학생과 이 과정을 다시 정리하면서 “복사용지는 찾았는데 원래 장소에 없습니다. 새로 둔 곳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문서 분류 업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라고만 말하는 대신 “일반 문서는 정리했는데 이 서류를 어느 칸에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처리한 부분과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함께 말하면 질문을 받은 사람도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긴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민호가 자주 사용하는 작업대 한쪽에 두 문장을 적어두었습니다. 첫 번째는 “여기까지 했습니다”였고, 두 번째는 “이 부분을 모르겠습니다”였습니다. 학생은 이 문장을 보면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문장을 그대로 외우게 하기보다 자신의 업무 상황을 설명하는 틀로 활용했습니다. 민호가 질문할 때마다 바로 답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곳은 어디인가요?”, “작업 안내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라고 되물으며 먼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게 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모든 문제의 해결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되던 질문이 직장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유

교실에서 질문 문장을 연습한 뒤에는 민호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실습 현장에 가면 다시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교실에서는 교사가 민호의 질문을 기다려주지만, 직장에서는 담당자가 통화하거나 다른 직원과 대화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민호는 바쁜 사람에게 말을 걸면 혼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질문 문장만 연습하지 않고 질문할 시점까지 함께 다뤘습니다. 담당자가 통화 중일 때는 바로 옆에 서서 계속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가 통화가 끝난 뒤 다시 찾아갔습니다.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다른 업무에 영향을 주는 일인지, 잠시 기다려도 괜찮은 일인지도 실제 작업을 통해 판단해 보았습니다.

질문할 사람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도 연습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묻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무를 지시한 담당자가 누구인지 먼저 확인했습니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을 때는 어느 직원에게 문의할 수 있는지도 미리 정했습니다. 직장 담당자에게는 민호가 질문했을 때 “그것도 모르느냐”고 반응하기보다, 어느 부분까지 확인했는지 먼저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학생만 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질문을 허용하고 적절하게 대답해 주는 환경이 함께 마련돼야 배운 행동이 실제 직장에서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담당자가 학생의 질문을 모두 대신 해결해 주면 민호는 다시 기다리는 사람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알려주기 전에 작업표나 메모를 먼저 확인하도록 기준을 맞췄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상 위에 놓았던 질문 문장은 조금씩 줄였습니다. 처음에는 완성된 문장을 보여줬지만, 이후에는 ‘어디까지 했는가’와 ‘무엇이 어려운가’라는 두 가지 단서만 남겼습니다. 마지막에는 별도의 도움 없이 자신의 말로 질문하도록 기다렸습니다. 교육자가 지원을 빨리 없애는 것보다 학생이 실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줄여가는 편이 중요했습니다.

짧은 질문이 직장생활을 바꾸기 시작하다

민호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잘하던 날도 있었고, 다시 아무 말 없이 멈춰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낯선 직원 앞에서는 목소리가 작아졌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교사의 눈치를 먼저 살피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질문하지 못한 행동을 꾸짖기보다 어느 단계에서 어려웠는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품 정리 중 물품 위치가 바뀐 일이 있었습니다. 민호는 예전 보관함을 확인한 뒤 담당자에게 다가가 “지난번 장소에는 없는데 새로 둔 곳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새로운 위치를 안내받은 뒤에는 수첩에 보관 장소를 적고 작업을 마쳤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장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민호가 기다리는 학생에서 자신의 문제를 설명하는 직장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업무를 혼자 완벽하게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도움을 구하고 받은 정보를 기록한 뒤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습니다.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을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는 능력으로만 평가하면 도움 요청은 의존적인 행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직장에서는 누구나 업무가 불분명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면 동료와 상의합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정확하게 요청하는 것은 함께 일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기옹호 능력입니다. 직업교육의 목표도 학생이 한 번도 실수하지 않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대로 멈추거나 임의로 처리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과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해 표현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질문한 뒤에는 설명을 듣고 기록하며 다시 업무를 이어가는 경험까지 연결돼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했는데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이 짧은 문장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기까지 민호에게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충분히 기다리고 실제 상황에서 반복해서 연습했을 때, 도움 요청은 학생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행동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스스로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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