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발달장애 학생에게 성교육을 한 번 했다고 말하면 보호자들은 안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신체의 명칭과 성폭력 예방법을 배웠고, 누군가 몸을 만지려고 하면 “싫어요”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정답을 말하는 것과 실제 상황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지도했던 한 학생도 성교육 시간에는 모든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몸을 만지면 거절하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어른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장난처럼 어깨를 감싸거나 손을 잡았을 때는 싫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배운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판단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성교육은 지식을 한 번 전달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상황에서 반복하고, 실제 생활과 연결해 연습해야 비로소 자신을 보호하는 힘이 됩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움

발달장애 학생은 교사가 제시한 명확한 질문에는 비교적 정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몸을 만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으면 “싫다고 말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같은 반 친구이거나 평소 친절하게 대해주던 사람이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낯선 사람의 모습과 실제 위험 상황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학생은 친한 사람의 부탁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해도 관계가 나빠질까 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상대를 좋아하면 손을 잡거나 계속 따라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성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나타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원인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싫다고 말하면 즉시 멈추기, 대답하지 않는 것을 동의로 생각하지 않기, 친한 사이에도 신체 접촉 전에는 허락받기처럼 행동 기준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한 가지 사례를 설명한 뒤 인물과 장소를 바꾸어 다시 질문하면 학생이 규칙을 다른 상황에도 적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달 단계보다 생활 속 경험을 기준으로 지도

발달장애인의 성교육을 시작할 때 흔히 생기는 고민은 어느 수준까지 가르쳐야 하는가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로 신체 변화나 관계에 관한 설명을 미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몸은 인지 발달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사춘기에는 신체 변화가 나타나고, 성인이 되면 연애나 이성 관계에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교육을 미루면 학생은 정확한 정보보다 주변 사람의 말이나 인터넷 영상으로 성을 먼저 접하게 됩니다.

 

제가 수업에서 중요하게 본 것은 학생이 용어를 얼마나 많이 외우는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고 있는지, 옷을 갈아입을 장소를 구분하는지, 불편한 접촉을 표현할 수 있는지,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시험을 위한 성지식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자립기술에 가깝습니다.

교육 영역 구체적으로 확인할 행동 반복해서 연습할 상황
신체 이해 신체 부위와 변화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씻기, 옷 갈아입기, 건강 상태 말하기
경계와 동의 허락을 구하고 거절하면 즉시 멈추기 손잡기, 포옹하기, 사진 촬영하기
공적·사적 행동 장소에 따라 가능한 행동 구분하기 교실, 화장실, 탈의실, 개인 방
도움 요청 상황을 숨기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알리기 불편한 접촉, 사진 요구, 비밀 강요

학생마다 필요한 교육의 출발점도 달랐습니다. 어떤 학생은 신체 부위의 정확한 명칭부터 배워야 했고, 어떤 학생은 연애 관계에서 상대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나이만 보고 교육 수준을 정하기보다 현재 생활에서 어떤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반복교육은 같은 말을 계속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성교육을 반복해야 한다고 하면 같은 자료를 여러 번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문장을 외우는 데서 멈추지 않으려면 사람, 장소, 관계를 바꾸어 연습해야 합니다. 교실에서 그림카드를 보고 정답을 말한 다음에는 역할극으로 연습하고, 며칠 뒤 실제 생활에서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학생에게 “싫다고 말해”라고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표정을 굳히고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연습,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연습, 교사나 보호자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연습을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말로 거절하기 어려운 학생에게는 도움카드나 휴대전화의 지정 연락처를 활용하게 했습니다.

 

가정과 교육기관에서 사용하는 표현도 가능하면 통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사적인 신체 부위”라고 가르치는데 가정에서는 전혀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학생이 같은 의미로 연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이상하면 피해야 한다”와 같이 모호한 기준보다 “수영복으로 가려지는 신체 부위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사진으로 보내지 않는다”처럼 관찰할 수 있는 행동으로 설명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 학생은 처음에는 누군가 사진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매번 다른 답을 했습니다. 실제 휴대전화를 활용해 사진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답장하지 않기, 화면을 닫기, 믿을 만한 어른에게 보여주기를 순서대로 연습했습니다. 반복 후에는 문장을 외워 말하는 수준을 넘어 행동 순서를 스스로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변화였지만 실제 위험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성교육의 목표는 통제가 아니라 안전한 자립

발달장애 학생이 성에 관심을 보이면 행동을 막는 데 먼저 집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감시와 금지만으로는 보호자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왜 안 되는지, 어떤 장소에서 가능한지, 상대의 동의는 어떻게 확인하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것은 성교육이 별도의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위험한 부탁을 거절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과정이 자립교육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 번의 교육으로 행동이 바로 달라지지 않더라도 생활 속 사례가 생길 때마다 짧고 구체적으로 다시 가르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의 성교육에서도 학생이 얼마나 많은 내용을 기억하는지만 확인해서는 안 됩니다. 낯선 장소와 다른 관계에서도 배운 기준을 적용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반복은 학생을 통제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보호자가 곁에 없을 때도 자신의 몸과 관계를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처음 혼자 버스를 탄 날

등록만 하면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