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철(가명)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 학생을 어떤 직무에 연결할 수 있을지보다 먼저 “이 학생이 대학이라는 공간의 규칙 안에서 3년을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했습니다. 그만큼 생활 전반이 정돈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공공장소와 사적 공간의 구분이 흐렸고, 어디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옷과 가방을 아무 데나 던져두고, 남의 음식에 쉽게 손을 대거나 기웃거리고, 바닥에 털썩 앉거나 눕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1학년과 2학년 자료를 보면 이런 부적절한 생활태도와 공공장소에서의 규범 미준수가 반복적인 문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명철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고, 제한적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낯선 상황에서도 정류장을 놓쳤을 때 대처하는 능력은 있었습니다. 또래와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고, 야구나 운동처럼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는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했습니다.
즉, 인지가 전혀 없는 학생이 아니라 생활규범과 자기조절을 배우지 못한 학생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하지 마”라는 반복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다시 배우게 하는 교육이었습니다.
1학년: 생활을 다시 배우는 단계
명철이의 1학년은 학습보다 생활이 우선인 시기였습니다. 읽기, 쓰기, 수 개념이 약하고, 컴퓨터 활용도 제한적이어서 수업 이해와 과제 수행에 한계가 있었지만, 실제로 더 심각했던 것은 행동의 절제능력 부족과 기본생활기술의 미형성이었습니다. 기록에도 감정표현이 정제되지 않고, 1차적 욕구 충족이 우선되며, 소지품 관리와 위생, 정리정돈이 매우 미흡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학년 교육은 “배우는 학생”으로 만들기 전에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학생”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때 적용한 접근은 환경구조화와 행동규칙의 시각화였습니다. 식사하는 공간, 쉬는 공간, 정리하는 공간을 구분하고, 어디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반복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문제행동이 나타난 뒤에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전에 기준을 먼저 제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은 특수교육에서 말하는 선행사건 중재(antecedent intervention)와 연결됩니다. 문제행동이 발생한 뒤 결과를 주는 방식보다, 행동이 일어나기 전 환경과 단서를 조정해 바람직한 행동이 나오도록 돕는 것입니다. 명철이처럼 충동적이고 욕구 중심으로 움직이는 학생에게는 특히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생활기술은 말로만 알려서는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수저 놓기, 테이블 닦기, 물건 정리하기처럼 단순하지만 반복 가능한 행동을 매일 수행하게 했습니다. 1학년 자료에서도 가정에서 수저 놓기, 테이블 닦기 등을 습관화하도록 권유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반복은 단순한 심부름이 아니라 적응행동(adaptive behavior) 훈련입니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활기술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2학년: 습관화된 행동을 끊고 대체 행동을 만드는 단계
2학년이 되면 보통 학생들이 조금 안정되기 마련인데, 명철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생활태도가 조금 나아진 듯 보이지만, 감독이 없으면 다시 원래 행동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학년 자료에도 “관리감독 없이 행동개선이 지속되지 않는다”, “부적절하게 형성된 생활태도가 상황과 장소에 따른 분별 없이 습관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즉, 이 시기의 핵심은 한 번 지적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습관화된 행동의 고리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기능적 행동평가(FBA)의 시선이었습니다.
“왜 이 행동을 하나?”를 묻지 않으면, 같은 행동을 계속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하게 됩니다. 명철이의 경우 행동의 기능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첫째, 관심을 얻기 위한 행동.
둘째,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
셋째, 하기 싫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
그래서 개입도 그 기능에 맞춰 달라져야 했습니다. 단순히 금지하는 대신, 대체 행동을 반복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관심을 받고 싶을 때는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하게 장난치는 대신 이름을 부르고 기다리기, 하고 싶은 것을 바로 실행하는 대신 허락을 구하거나 순서를 기다리기, 하기 싫은 과제가 있을 때는 도망가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대신 “도와주세요”, “한 번만 더 설명해 주세요”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기능적 의사소통 훈련(FCT)의 기본 원리와 연결됩니다. 문제행동이 수행하던 기능을 보다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행동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또래관계 지도도 중요했습니다. 명철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표현이 습관화되어 있었고, 장난의 강도가 높아지면 갈등으로 쉽게 번졌습니다. 2학년 기록에도 감사, 도움, 친절, 사과 같은 긍정적 표현에 대한 지속적인 지도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친구에게 잘해라”라고 말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 기술 교수(social skills instruction)를 적용했습니다. 인사하기, 미안하다고 말하기, 부탁하기, 고맙다고 표현하기 같은 기술을 상황 속에서 직접 연습하게 했습니다. 명철이처럼 언어표현이 풍부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추상적인 도덕 교육보다, 구체적 장면을 반복 경험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3학년: 직무보다 먼저 작업행동을 세우는 단계
3학년이 되면 현실이 더 분명해집니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집니다. 명철이는 노인케어학과에서 실습을 했지만, 3학년 직무평가를 보면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언어적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일정표를 보고 수행하기 어렵고, 자기소개도 스스로 하기 어려우며, 신체활동지원은 순서·속도·힘조절에서 반복적인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청소와 분리수거는 가능했지만, 이불정리와 시트교환은 언어적·신체적 도움 없이는 완성도가 낮았습니다. 정서지원과 보고하기, 업무일지 작성은 특히 어려운 영역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외부 면접에서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로 야구선수를 말할 정도로 직업 인식도 미흡했습니다. 당시 평가는 “취업이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평가를 보면서 오히려 명철이의 가능성을 더 분명히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직무 전반은 어렵더라도, 청소, 분리수거, 정리정돈처럼 구조가 명확한 반복 업무에서는 수행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즉, 명철이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대인서비스 직무가 아니라,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절차가 반복되는 업무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과제분석(Task Analysis)과 작업행동 훈련(work behavior training)이 핵심이었습니다.
업무를 큰 단위로 설명하면 명철이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청소하기도 “걸레 찾기–물 적시기–바닥 닦기–제자리 두기”처럼 쪼개서 가르쳤습니다. 반복 가능한 단순 직무를 몸으로 익히게 하자, 명철이는 설명보다 수행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절차기억 기반 학습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인지적 확장보다는 반복된 경험 속에서 익숙해지는 방식이 명철이에게 더 맞았습니다.
지금의 명철이: ‘취업이 어렵다’던 학생이 사회 안에서 역할을 갖다
지금 명철이는 졸업 후 요양원에서 청소 업무를 맡고 있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장애인일자리 사업에도 발탁되어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3학년 평가서의 “취업이 어려움”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면 정말 큰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구조화하고, 문제행동의 기능을 분석하고, 대체 행동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적응행동과 작업행동을 일관되게 훈련한 3년의 결과입니다. 명철이는 완벽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분명히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야생 같다”고 느껴질 만큼 규범이 없던 학생이, 지금은 정해진 자리에서 청소와 정리를 하며 하루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특수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못했던 생활을 다시 배우게 하고,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행동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 말입니다.
명철이의 3년은 저에게도 큰 공부였습니다.
인지가 낮은 학생이라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에게 맞는 구조와 반복,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배움이 생활이 되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명철이는 그 배움의 결과를 자기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